[E북] 독거 노인의 현실을 꼬집는 단편 소설: 마지막 밤 _ 임민석
성냥팔이 소녀를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독거노인의 관점에서 각색한 창작 단편 소설 마지막 밤을 소개합니다! 이 단편 소설은 성냥팔이 소녀가 혼자 맞이한 비극적인 결말을 현실에서 살아가는 독거노인의 시점으로 재창작한 소설입니다. 리어카를 훔쳐 도망가는 도둑을 쫓는 노인에게 조금의 관심이 있었다면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보호자 연락이 되지 않는 노인에게 관심이 있었으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었다면'을 생각하시면서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밤
임민석
지독히도 더운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지랑이 뿜는 아스팔트 위에서, 삐쩍 마른 노인은 폐지가 가득 실린 낡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있었다. 노인은 전신주 아래 놓인 박스를 집어 들어, 리어카 한쪽 구석에 찔러 넣고는 다시 육중한 박스더미를 출발시켰다. 흘러내리는 땀, 씩씩대는 숨소리와 함께 위태롭게 나아가던 리어카는 얼마가지 않아 갓길에 멈춰 섰다. 뒤를 따르던 택시가 빠앙- 거리며 경적을 울렸다. 노인은 벽돌을 꺼내어 바퀴에 대어놓고,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주워들었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한 입 빨아들이자, 컥컥- 더위를 먹었는지 헛구역질이 나왔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노인은 바닥에 연신 침을 뱉어대며, 뒤편 은행 ATM점을 바라보았다.
뺨에 닿는 공기는 차갑고 맑은 호숫물 같았다. 차르르륵- 돈 세는 소리는 기분 좋게 귀를 두드렸다. 노인은 창문에 붙어 누가 가지고 갈까 리어카를 주시하고 있었다. 땀이 식자 노곤함이 몰려왔다. 눈두덩을 꾹꾹 누르는데 누군가 노인을 불렀다.
“뭐 도와드릴 거 있습니까?” 청원경찰이었다. 노인은 말없이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친절한 청원경찰은 “물 한잔 드시고 가세요, 어르신.” 하며 노인의 손을 잡아끌고, 은행으로 이어진 문을 열었다. 그는 입구에 놓인 정수기에서 종이컵을 하나 뽑고는 물을 담아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짧은 목례를 하고 물을 들이켰다. 노인은 청원경찰을 슬쩍 쳐다보고는 연거푸 다섯 잔을 더 들이키고 말했다. “고맙소.” 좀 더 쉬시다 가라는 청원경찰의 말을 고사하고 노인은 은행을 나섰다. 문을 열자 탁한 열기에 숨이 막혔다. 4차로엔 자동차들이 쌩쌩 지나다녔다. 바짝 말랐던 노인의 이마에 식은 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노인은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 사람들에게 소리쳐 말했다.
“누가 리어카 끌고 가는 거 못 봤소?”
몇몇은 본체도 하지 않았고, 몇몇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구석에 앉아 쭈쭈바를 빨던 아이가 차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가자 저 멀리 리어카가 보이는 듯 싶었다. 노인은 황급히 뛰었다. “저 놈 잡아라. 도둑놈 잡아라.” 잔뜩 쉰 목소리가 힘없이 울렸다. 행인들은 노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거리 맞은편에서 직좌신호를 받은 차들이 왕래하고 있었지만, 노인은 멈추지 않고 사거리를 가로질러 달렸다. 빠앙- 빠앙- 경적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끼익- 거리며 차들이 멈춰 섰다. 노인의 입에서 갑자기 발작 같은 기침이 터져 나왔다. 노인은 주저앉아 미친 듯이 기침을 했다. 혼란스레 섞인 차량들로 사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노인은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 목을 움켜쥐고 켁켁- 거렸다. 횡단보도의 행인들이 걱정스럽게 노인을 쳐다봤다. 멈춰선 차량에서 서너 운전자들이 나와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은 끄윽- 거리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팔뚝에 링거가 꼽힌 채, 노인은 어느 병원 응급실 한편에 누워 있었다. 방금 깨어난 노인이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살피는데, 간호사가 다가왔다. “정신이 좀 드세요?” 혈액검사 결과 간수치가 어떻고, 혈압이 어떻고 주절대는 간호사의 말을 가로막으며 노인이 말했다. “치료비는 얼마요?” 간호사가 수액을 조정하며 말했다. “퇴원수속 때, 결산되어 나와요. 저기 어르신, 우선은 보호자분과 연락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의사선생님이 말씀드릴 것도 있고요. 전화가 필요하시면 저희 데스크에서...” 노인이 간호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저기” “네?”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와도 되겠소?” “그럼요. 저쪽, 엘리베이터 옆에 있어요. 부축해드릴까요?” “괜찮소.”
노인은 녹초가 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 누군가는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고 있었고, 어디선 술판을 벌였는지 시끄러웠다. 노인은 덜렁거리는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스위치를 켜자 어둑한 전구불이 깜빡였다. 바닥에 축 쳐진 고양이는 반가운지 원망스러운지 작게 야옹거렸다. 손을 씻으려 싱크대의 물을 틀었지만 나오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 페트병을 꺼내보지만, 한 모금 될까 말까다. 텅 빈 고양이의 물그릇에 부어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할짝거린다. 노인은 싱크대 위 선반을 열고 반투명 밀폐용기를 꺼내본다. 그 속엔 천 원짜리 지폐 하나, 동전 몇 백 원이 전부다. 용기를 다시 집어넣고, 노인은 빈 페트병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랫동네, 놀이터 식수대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좀 더 걸어가자, 24시 국밥집이 보였다. 들어갈까 망설이다 노인은 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결국 지하철역 화장실에 도착했다. 노인은 고개를 숙여 실컷 물을 들이켰다. 페트병 가득 물도 받았다. 지하철 역사 앞에는 분수대가 조성되어 있었다. 바닥에서 색색의 조명에 물든 물이 뿜어 나왔다. 벤치 한편에 앉은 노인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슬쩍 분수대로 걸어가, 솟구치는 물에 몸을 적셨다. 두 사이즈는 커 보이는 누런 반팔셔츠가 노인의 새까맣고 앙상한 몸에 달라붙었다. 노인은 잠시간 그렇게 흩뿌리는 물을 맞았다.
노인은 군데군데 깨지고, 수평이 맞지 않는 콘크리트 계단을 걸어 올랐다. 술판은 끝났는지 조용했다. 문손잡이를 잡고, 열쇠를 꼽아 돌리려다 멈춰선 노인이 실성한 듯이 웃어 젖혔다. 묵직한 물병은 여전히 벤치 아래에 놓여 있겠지만, 돌아갈 기운은 남아있지 않았다. 문을 열자 고양이는 죽은 듯 쓰러져있었다. 깜빡이던 불은 꺼져 버렸다. 노인은 서랍 속에서 짜리몽땅한 촛불을 꺼내 불을 붙였다. 혹시나 하고 수도꼭지를 열어보지만, 푸슉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흙탕물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노인은 바닥에 드러누워, 발가락으로 선풍기 버튼을 눌렀다. 선풍기가 끽끽대며 돌아갔다. 한참을 뒤척이던 노인이 일어섰다. 냉장고를 열고, 저 깊숙이서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벽에 기대앉았다. 한 모금 들이키더니, 방구석에 놓인 철제성냥박스를 끌고 와 열었다. 그 안에서 손수건에 쌓인 사진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노인은 소주를 홀짝거리며 몇 장 안 되는 사진을 한 장씩 넘겨가며 바라보았다.
- 작은 성냥갑을 뱉어내는 어느 기계 앞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집중한 한 남자.
- 결혼식장, 주례 앞에 선 무표정한 두 남녀.
- 잔뜩 울상인 아기를 안고 웃고 있는 부부.
-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웃는 여자아이.
노인은 고개를 들어 한쪽 벽을 올려보았다. 사진 속 여성과 여자아이의 얼굴이 확대된 흑백 영정사진이다. 노인은 시간이 정지된 듯 움직임도 없이 두 사진을 번갈아가며 하염없이 바라본다. 한참 후에야 일어난 노인은 현관으로 가 문을 한 뼘 가량 열어둔다. 그리고 냉장고 앞에 서서 무슨 결심이라도 한 마냥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장고 안을 채운 몇 안 되는 반찬통이며, 쌀 봉지며 죄 꺼내놓고, 몸을 구겨 텅 빈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얼마 있지 않아 방안을 비추던 몽당촛불마저 희미하게 수그러들었다. 이따금 들리던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냉장고 냉매의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방안은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다. 길게 이어지던 어두운 적막함 끝에서, 작게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기를 달래는 여성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다. “자, 웃으세요. 찍습니다.”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늘어졌다. 저 멀리 작은 불빛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어둠 속 렌즈를 바라보는 노인의 입가에 짧은 미소가 스쳤다. 스르륵- 촛불의 희미한 불이 꺼지자, 한 줄기 새하얀 연기가 비틀대며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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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콘텐츠는 공유마당의 공공저작문인 마지막 밤 (임민식)를 활용하였습니다,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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